실재의 경계에서
Thursday, October 1, 2026
아트스페이스 휴는 2026년 3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기획전 〈실재의 경계에서〉 제1부 전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에서〉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적 성취와 미학적 성과를 되짚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온 중장년 작가들이 문자·행위·드로잉·설치·미디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개척해온 지속적인 예술 실천의 가치와 그들이 이뤄온 성취를 전시공간에서 새롭게 마주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 전시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실재의 경계에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월 25일부터 10월 13일까지 총 4부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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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에서_주재환, 김광우_2026.3.25-4.28
주재환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실험미술·개념미술·민중미술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원로 작가다. 일상의 사물과 언어를 전유해 사회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내는 그의 작업은 경쾌한 형식 속에 날카로운 시대통찰을 품고, 한국미술의 표현 지평을 넓혀왔다. 김광우는 현대미술이론을 깊이 연구한 평론가이자 작가로, 회화의 본질을 ‘얼룩’으로 규정하며 진부한 물질의 변용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안한다.
두 작가의 작업은 2025년 ‘띵찰’ 전시에서 시작된 명찰 형식의 실험에서 확장되었다. 주재환은 명찰이라는 일상적 텍스트 프레임을 통해 사회적 기능을 해체하고, 무심히 지나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대를 꿰뚫는 이미지를 호출하며, 김광우는 그 위에 얼룩과 비정형 이미지를 덧입혀 텍스트를 흐트러뜨린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는 시각적 무의식을 침투하고 이미지는 언어적 구조를 재배치하며 경계를 오간다. 관람자는 고정된 읽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유쾌한 해석과 마주하게 되고, 이들 작품 앞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현실과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세태를 천천히 되새겨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재료의 물성이나 진부한 관념들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두 작가의 의도와 그것이 오늘의 동시대성과 맞닿는 지점을 주목한다. 이러한 태도는 두 원로 작가의 경쾌하고 명랑한 예술정신을 상징하며, 무거운 사유를 일상의 재료로 풀어내 동시대 미술의 생동감을 드러낸다. 김광우가 이를 “묵상의 회화 Meditative Paintings”라 명명한 바와 같이, 작품은 오래 바라볼수록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은 한없이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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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언어와 신체의 경계에서_날개, 윤진섭_2026.5.6-6.9
날개는 이번 전시에서 기술과 예술, 그리고 문자의 조형성이 결합된 파격적인 실험을 선보인다. 그는 벽면에 부착된 ‘스파이더 형태의 로봇’이 스스로 드로잉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작가의 신체를 대신한 기계의 움직임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적 흔적을 남기는지 탐구한다. 이 로봇 드로잉은 정교하게 설계된 타이포그래피의 질서와 기계적 우연성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의외의 미학적 지점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선보이는 액션 페인팅 작업은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와 물성이 강조된 페인트의 질감을 통해 문자의 본질적인 구조를 재해석한다. 날개(안상수)는 한글 서체 개발을 통해 한국 디자인의 지형을 바꾼 성과를 넘어, 이제는 로봇 기술과 회화적 실천을 융합하며 현대미술의 문맥 안에서 문자를 생동하는 실체로 전이시킨다. 그의 작업은 ‘쓰는 행위’가 기계와 인간,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어 어떻게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로 확장되는지 증명한다.
실험예술가이자 비평가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온 윤진섭은 기성의 작품과 일상의 사물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현실의 관념을 독특하게 비트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특히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특유의 위트와 해학으로 풀어내며 현대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낳은 소유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해 소외된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사유의 중심에 둔다. 윤진섭은 사물이 지닌 물리적 실체인 신체와 그것을 규정하는 이름인 언어 사이의 느슨한 틈을 파고들어, 관습적인 명명법을 전복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오브제 작업과 퍼포먼스적 요소들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일상적 소재를 전유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하는 그의 작업은, 언어가 지닌 관념의 틀을 신체적 직관과 해학으로 해체하며 동시대 미술이 지녀야 할 날카로운 통찰과 생동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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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일상과 자연의 경계에서_전원길, 김순임_2026.6.17-7.21
김순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The Unknown Edible Beauty〉라는 주제로 자연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드로잉과 콜라주, 영상 작업으로 선보인다. 작가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자연 환경과 그곳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하며, 거기서 발견된 서사를 특유의 자연 오브제와 엮어내는 ‘직조자’의 역할을 자처해 왔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은 작가가 도시의 아파트에 살며 상가 작업실을 오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자연의 긴밀한 기록들을 목격하게 된다. 대형마트의 밝은 조명과 전산시스템 속에서 매끈하게 포장되어 마치 공산품처럼 소비되는 음식들 속에서 현대인들이 망각해온 음식 고유의 ‘생명성’에 작가는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우리가 먹고 버린 흔적을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고 만지며, 그 촉감과 시각적 형태에 시간과 마음을 더해 종이 위에 기록했다. 2017년 독일 와이너리에서 포도 껍질을 드로잉 북에 붙이며 시작된 이 즉흥적인 사색(Reading Grapes)은 타이페이, 미국 코네티컷, 울산, 부산을 거쳐 현재의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정주지가 바뀔 때마다 먹고 버려지는 재료들의 미감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참외씨나 해바라기씨를 말려 형태를 만들고, 차를 우리고 남은 부산물로 그려낸 드로잉과 콜라주, 이들의 소멸 과정을 담은 영상 작업은 관람객에게 “우리는 생명을 먹는 생명이며, 이 일상 또한 자연의 거대한 순환”이라는 묵직한 미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전원길 작가는 색채를 사물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한 감각 현상이자 인간의 눈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감각의 막(Membrane of sensation)’으로 정의하며 평면 및 설치 작업을 전개해 왔다. 특정한 사물의 색으로부터 출발하는 고유의 작법을 유지하면서도, 사물과 색을 분리하고 형상을 기하학적으로 변주하는 전위적인 실험을 선보인다. 이번에 관객들이 마주할 작품 〈생성공간(Space Emergence)〉 시리즈 5점은 하나의 화강암에서 발견한 5개의 색채에서 출발했다. 돌을 촬영한 후 포토샵에서 최대한 확대하여 이미지의 ‘픽셀’을 채집했고, 그 색을 그대로 화면에 옮겼다. 물감의 명도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수직으로 쌓아 올린 색층들은 배경과 동일한 명도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단색의 뚜렷한 기하학적 형태들은 화면을 흑백으로 전환하면 배경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기계적인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완결된 이 화면은 역설적으로 ‘사이버네틱(Cybernetic)한 비현실 공간’을 창조하며 절제된 조형적 울림을 준다. 함께 출품된 설치 작품 〈마음속의 돌-2026〉은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인위적 의지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전남 구례 섬진강 서시천에서 오랜 시간 물에 굴러 다듬어진 화강암 자연석 8개를 수집했다. 한 면은 완벽한 타원형이지만 반대편은 늘 찌그러져 있는 자연의 유한성 앞에서, 작가는 결국 집 주변의 각진 돌을 직접 깎아 자신이 열망하던 완벽한 원형의 돌 1개를 만들어냈다. 자연이 준 8개의 돌과 인간의 노동이 만든 1개의 돌이 나란히 놓인 풍경은 자연 속 생명의 근원과 인간의 존재를 깊이 탐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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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사물과 이미지의 경계에서_이매리, 임선희, 최인아_2026.9.9-10.13
이매리 작가에게 ’시(詩)’는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이지만, 몸과 목소리를 통해 다른 시간과 장소로 옮겨지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작가는 드로잉,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전쟁과 이주 등 인류가 반복적으로 겪어 온 사건과 서사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작가의 대표 연작 《Poetry Delivery》는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인간이 오랜 시간 반복해 온 이동과 정착, 떠남과 귀환의 역사를 응시하는 작업이다. 2015년작 《Poetry Delivery 2015》에서는 50개국에서 온 익명의 참여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민족시를 낭송하는 2채널 영상을 통해, 문명화와 산업화가 인간과 자연·공동체에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매개로서의 ’시’를 제시했다. 이어 2017년작에서는 작가 자신이 태어난 집터가 고려시대 절터 발굴 현장에 편입되며 사라진 개인사적 경험을 출발점 삼아, 한국 남부의 이주민과 뉴욕의 이주자들의 목소리를 연결했다. 이후 이 연작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리 The Homeland Yet to Arrive》로 확장되며, 실제 민족시와 자연언어를 24개 음소로 이루어진 가상언어 ’ARU’로 옮기고 여섯 개의 몸을 통해 순환시키는 실험으로 나아갔다. 작가는 언어가 어느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듣고 기억하고 다시 건네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매리 작가는 이러한 ’시 배달자’로서의 문제의식을 모니터라는 사물-화면 위에 응축된 영상 작업으로 제시한다. 설치가 아닌 화면이라는 매체로 응축된 이번 작업은, 목소리와 기억이라는 비가시적 대상이 이미지로 맺히는 순간을 관객이 화면 앞에서 마주하게 한다.
임선희 작가는 사물을 화면 위의 이미지로 옮기는 회화의 오랜 관습, 즉 정물화로부터 출발해 그 사물과 이미지 사이에 놓인 긴장을 탐구해 왔다. 작가는 2015년부터 평면성, 선, 색, 붓질, 시점, 층위와 같은 회화의 형식적 요소를 중심에 두고 ’미디움으로서의 회화’가 지닌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2017년 이후 서사와 감정, 인간 내면에 관한 질문을 형식적 탐구 위에 결합하기 시작했고, 팬데믹을 지나며 경험한 사회적 고립과 불확실성은 작가의 시선을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내면의 모순으로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Still Life》 연작은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의 형식과 상징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호출한다. 해골과 꺼진 촛불, 시든 꽃으로 죽음과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했던 과거의 바니타스와 달리, 작가의 화면에는 아름다운 꽃과 과일, 화려한 도자기가 사물로서 등장한다. 단단해 보이는 도자기는 작은 충격에도 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꽃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으며,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은 결국 부패한다 — 작가는 이러한 사물의 속성이 화면 위 이미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완전함과 안정을 붙잡으려는 인간 존재의 일시성을 발견한다. 이 연작의 사유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제기된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키치(kitsch)’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통상 키치가 가볍고 조악한 모방을 뜻한다면, 쿤데라에게 키치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제거하고 믿고 싶은 이상적 세계만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가깝다. 임선희 작가는 이 상반된 의미의 키치를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시킴으로써, 완벽하게 편집된 삶을 추구하는 동시대 사회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회화적 탐구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 대중문화인 ’드라마’의 문제를 다룬 영상 작업이 함께 제시되어, 실제 사물과 미디어가 편집한 이미지 사이의 동시대적 긴장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최인아 작가는 도시에서 마주친 사물과 풍경의 흔적이 화면 위에서 어떻게 이미지로 재구성되는지에 주목한다. 30대 후반의 여성 작가인 그는 근래 한국 현대 회화의 변화와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여러 사회와 국가를 오가며 성장한 작가의 개인사적 경험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작업 세계로 이어졌다. 매번 바뀌는 환경 속에서 관계와 공간이 쉽게 고정되지 않았던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경험과 상상을 통해 세계를 스스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태도를 갖게 했다. 변화 사이의 단절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하나의 선형적 서사라기보다 감정과 분위기가 뒤섞인 파편적 서사에 가깝다. 작가는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화면 위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하나의 형상이 드러나면 다른 형상은 지워지거나 겹쳐지고, 색면과 형태는 충돌하고 연결되며 새로운 풍경을 이룬다. 최근 작가는 도시의 주변화된 자연 — 도시의 틈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나 방치된 강 주변의 녹지 — 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이러한 사물들은 계획된 질서 밖에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다양한 시간과 흔적을 품고 있다. 작가는 “밤의 강가에서는 민물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난다”고 적으며, 갈대의 수직성과 강의 수평적 흐름이 이루는 대조, 그리고 강 하류의 진흙 속에 묻힌 수많은 시간과 서사에 대한 사유를 화면으로 옮긴다. 현실의 사물과 풍경, 기억, 상상이 색과 면, 형태로 중첩되는 그의 화면은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통해, 사물이 하나의 완결된 형상으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실재의 경계에서
1부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에서_주재환, 김광우_2026.3.25-4.28
2부 언어와 신체의 경계에서_날개, 윤진섭_2026.5.6-6.9
3부 일상과 자연의 경계에서_전원길, 김순임_2026.6.17-7.21
4부 사물과 이미지의 경계에서_이매리, 임선희, 최인아_2026.9.9-10.13
*본 전시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